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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10대 원리

현승북스

고중숙 (지은이)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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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이야기
<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10대 원리>는 머리말에서 ‘교양인’의 의미를 살피며 시작한다. 지은이는 젊은 시절 한 철학도가 상대성이론에 대해 물어온 점, 지은이도 이전부터 철학적 의문들을 생각해왔던 점을 상기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모든 사람은 애초부터 인문학과 자연학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교양인의 본능’을 지녔다고 추론한다. 그리하여 여러 지성인들의 ‘교양적 본능’을 일깨우고, 그들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교양적 갈증’을 해소해주기 위하여 자연과학의 심오한 원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엄선한 ‘자연과학 10대 원리’를 ‘세 측면’에 역점을 두고 서술
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열 덕분에 일반 지성인들의 지적 수준도 문・이과의 전반에 걸쳐 사뭇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문학도가 자연학을 배우기가 반대의 경우보다 버겁다고 여기는 게 통례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일반 교양인들을 대상으로 하되, 인문학도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세 측면에 역점’을 두었다. 곧 ‘수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직관적 이해’와 ‘체계적 이해’를 적극 도모했다.
지은이는 이를 위하여 자연과학의 10대 원리를 엄선했다. 아마 ‘과학의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10개는 부족하고 수십 개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내용이 방대해져서 책 한 권에 담을 수 없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책을 머나먼 지적 탐사의 여정에서 하나의 실마리로 삼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각자 앞으로 다른 원리들도 많이 알아가는 데에 맞추어 점점 더 풍성하고 정교하면서도 ‘문・이과의 지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교양인’의 ‘큰 그림’으로 완성해가기 바란다.
이러한 취지로 집필하였기에 이 책은 인문학과 자연학을 아우르는 교양의 본질적 의미에 잘 부합한다. 그러면서 지성적인 교양인들을 깊은 사색으로 이끌 주제들을 많이 품고 있는 근래 보기 드문 걸작이다. 따라서 참된 교양을 추구하는 분들의 필독서 중 하나로 흔쾌히 추천한다.

과학은 당대의 가장 담대한 철학이다 ― 윌슨(Edward Wilson, 1929~2021)
과학은 인류의 양심 Science is the conscience of humanity ― 고중숙

과학과 교양

이 책은 첫 장에서 ‘자연과학’이란 용어의 문제점부터 지적하며 시작한다. 이는 분명 새겨둘 만하므로 잠시 살피고 가자. 본래 ‘인문과학’은 ‘인문+과학’이 아니라 ‘인문꽈+학’이다. 게다가 ‘인문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사실은 이미 “자연과학=자연학=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냥 ‘인문학’이라 함이 옳다. ‘자연과학’도 본래 ‘자연+과학’이 아니라 ‘자연꽈+학’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은 괜히 복잡한 용어이므로 ‘자연학’ 또는 그냥 ‘과학’이라 함이 옳다. 하지만 아직은(또는 이제는) 고치기 어려우므로 『교양인을 위한 자연과학 10대 원리』라고 썼다.
한편 머리말에서는 ‘교양인’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지은이는 젊은 시절 한 철학도가 상대성이론에 대해 물어온 점, 그리고 지은이도 이전부터 철학적 의문들을 생각해왔던 점을 상기한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은 애초부터 인문학과 자연학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교양인’의 본능을 지녔다고 본다.
지은이는 ‘조화로운 교양’ 중 자연과학의 주요 원리를 이야기한다. 자연학도가 인문학을 배우기보다 인문학도가 자연학을 배우기가 더 버겁다는 점을 돕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세 측면에 역점을 두었다. 첫째로 수식을 최대한 배제했다. 다만 이마저도 버겁다면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각자의 수학 수준에서 최선의 이해를 추구하도록 권한다. 둘째로 직관적 이해를 적극 도모했다. 정식 공부에서는 논리적 이해도 중요하지만 교양 수준에서는 직관적 이해의 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셋째로 체계적 이해를 적극 도모했다. 지은이는 책의 여러 곳에서 ‘건물의 비유’를 썼는데, 참된 교양을 이루자면 체계적 이해가 필수이다. 건축 자재들이 아무리 좋아도 체계적 건물을 짓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점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10대 원리 맛보기
이후 지은이는 주관적으로 고른 자연과학 10대 원리를 차례로 서술하는데 요체의 일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뉴턴의 ‘①운동법칙’은 알고 보면 여러 천재의 합작이다. 이전의 천재인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에 이어 이후의 천재인 오일러의 기여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F=ma라는 유명한 식은 사실 오일러의 법칙으로 불러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공평히 말하자면 운동법칙과 F=ma의 발견 영예는 뉴턴과 오일러에게 적절히 안배함이 좋을 것이다.
‘②에너지보존법칙’은 오래도록 자연의 근본 가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더 근본 개념으로부터 유도되는 정리임이 밝혀졌다. 과학의 내용은 대개 원리로부터 수많은 귀결들이 유도됨으로써 풍성해지지만 반대로 더욱 근본적인 원리가 밝혀지기도 한다는 점은 과학의 심오한 묘미라고 하겠다.
‘③엔트로피증가법칙’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흔히 엔트로피는 무질서와 혼란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이제는 이러한 엔트로피의 억울함을 풀어주자. 엔트로피는 우주와 우리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몸에 피가 있고 우주에 에너지가 있어도 흐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심장이 피를 흐르게 하듯 엔트로피는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엔트로피는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잘 알고 소중히 활용해야 할 대상이다.
‘④맥스웰방정식’은 미국 독립전쟁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다. 당시에는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미국 독립전쟁에 비하면 아주 적은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맥스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류 역사를 이후 만 년쯤의 긴 안목에서 볼 때 맥스웰방정식이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힐 것이란 점에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같은 시기의 남북전쟁은 이 위대한 과학적 성과에 비하면 세월이 흐를수록 지엽적 사건으로 퇴색될 것이다.”
‘⑤상대성이론’은 사실 절대성이론이다. 이름 때문에 흔히 ‘상대성’을 밝힌 이론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절대성’을 밝힌 이론이란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상대성이론은 뉴턴이 세운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라는 헛된 절대성’을 허물고 ‘물리법칙과 광속의 불변이라는 참된 절대성’을 확립하여 펼친 이론이다.
‘⑥이중성원리’는 참으로 난해하다. 세상 만물의 근본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띤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자를 말 그대로 매우 작게 밀집된 알갱이로 여긴다. 반면 파동은 드넓은 호수나 바다에 널리 퍼진 물결의 모습으로 상상한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국지성’과 ‘광역성’이 어떻게 만물의 근본에 ‘함께’ 있을 수 있단 말일까? 하지만 수많은 관찰과 실험으로 확증된 사실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우리의 인식 체계를 혁신하여 온전한 이해에 이르도록 해야 할 뿐이다.
‘⑦확률성원리’도 비슷하다. 겉보기의 극단적 이분법을 어떻게든 융화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뉴턴이 수립한 ‘고전역학’은 ‘필연성을 품고 있지만’ 고전역학 자체는 ‘우연적으로 성립’하는 근사 이론일 뿐이다. 반면 오늘날 인류가 지닌 최선의 과학인 ‘양자역학’은 확률성원리라는 본질적 ‘우연성을 품고 있지만’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정확한 이론이다. 따라서 이 두 이론을 간추리면 “필연은 우연이고, 우연은 필연이다”라는 역설적 명제가 얻어진다. 하지만 우연과 필연의 말뜻이 같아진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연과 필연의 겉보기 대립을 지양하고 내면에 담긴 오묘한 융화를 잘 헤아려야 한다.
‘⑧불확정성원리’는 이중성원리 확률성원리와 더불어 ‘파동성 트리오’를 이루며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원리는 파동성을 배경으로 긴밀히 엮여있다. 하지만 함께 다루면 혼란스럴 수 있으므로 최대한 ‘체계적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불확정성원리는 기본적으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결정할 수 없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의미를 깊이 파헤치면 “만유의 근본이 하염없이 요동한다”라는 귀결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결국 경이롭게도 우주 창생의 근본 원리로 작용할 가능성까지 품게 된다.
‘⑨불완전성정리’는 불확정성원리와 함께 20세기의 양대 불가지론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오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불완전성정리는 사실은 완전성정리라는 게 그것이다. 불완전성정리는 모순 없는 공리계라도 불완전하다고 한다. 이는 증명된 정리이므로 수학적 진실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완전하다고 볼 수 있다. 곧 불완전성정리는 불완전을 품기에 완전성정리이며, 불완전을 배제한 완전이 오히려 불완전이다.
끝으로 ‘⑩진화론’은 영향력 측면에서는 가장 앞서는 이론일 것이다. 애초의 시작은 아득한 고대이지만 다윈이 혁명적인 근대 진화론을 수립하여 종교・철학・우생학・인종차별・제국주의・자본주의・나치즘 등등 인류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이러한 외면적 이슈들은 적잖이 해소되거나 가라앉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에 진화론의 내면적 함의는 반대로 가장 드넓은 우주론까지 확장되는 것 같다. 우리 우주 안의 생물은 물론 우리 우주를 비롯한 무한의 우주들도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류의 양심
책의 ‘마치면서’에서는 ‘의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의 원어 ‘science’는 ‘의식’의 원어 ‘conscious’와 어원이 같다. 곧 과학은 우리를 포함한 세상 모두를 의식하고, 이로부터 얻은 앎을 추구한다. 그런데 여기의 ‘앎’은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지식’과 ‘지혜’를 포괄한다. 라틴어로 지식은 스키엔티아(scientia)이고 지혜는 사피엔티아(sapientia)인데, 후자는 인간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반영되어 있다. 나아가 ‘science’는 ‘양심’의 원어 ‘conscience’와도 어원이 같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과학은 인류의 양심”이란 말로 마무리한다.
교양은 인문과 자연을 포용한다. 이 책은 교양의 이러한 본질적 의미에 잘 부합한다. 그러면서 지성적인 교양인들을 깊은 사색으로 이끌 주제들을 많이 품고 있는 근래 보기 드문 걸작이다. 따라서 참된 교양을 추구하는 분들의 필독서 중 하나로 흔쾌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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